진산의 공격대 이야기

World of Warcraft 2006. 9. 12. 23:45 posted by Soulive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거기에는, 묻어가는 사람에 대한 비난도, 그래봤자 내가 무슨 이득이냐는 투덜거림도, 자고로 공격대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변도, 명령하는 사람도 힘든데 좀 따라달라는 분노도 없었다.
그냥,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소망하면서, 나 혼자서는 잡을 수 없는 것을, 40명의 힘으로 잡아내는 사람들의 침묵과, 작은 격려들, 더 큰 목소리도, 더 작은 목소리도 없는, 어느 평범한 공격대가, 평범한 네임드를 잡는, 평범한 날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현실에는 없다. 우리는 늘 그런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 속의 동화는 좀 더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왕자는 뒷주머니에 도끼빗이나 꽂고 다니고, 공주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 용은 원고 마감이나 직장 상사로 폴리모프 해있고, 아이템 소유권 문제는 분배의 공정성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테러리스트적 논쟁으로 변장하고 있다.

현실에 없는 평범한 이상을 게임속에서 꿈꾸는 40명의 바보들 이야기는, 그렇다면 도피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형의 체험보다 소중한 경험은 없다. 오랜 시간 MMORPG를 체험하다가 현실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범하는 우를 본다. '한때는 미쳐서 했지만' '돌이켜보니 뭐했나 싶고' '남은 사람들도 정신차리기를 바라면서' 떠나는 거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 한때는 이 직장에 충성했지만' '돌이켜보니 뭐했나 싶을 거고' '또 다른 직장을 찾아가서 또 실패할 거다' '한때는 이 여자(남자)에게 미쳤지만' '돌이켜보니 다 헛짓이었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또 실패할 거다'

진짜 바보들은 자기가 사랑한 것, 시간을 투자한 것에 대해 돌아서서 침을 뱉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번도 제대로 그걸 아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기 힘들 거다. 어지간한 행운을 만나지 않고서는 말이다.

바라건대, 다들 후회하지 않기를.
지금 익숙하지 않은 어떤 것에 적응하는 재미를 찾기를.
떠날 때 떠나더라도 미련은 남기지 않기를.
잊을 때 잊더라도, 거기서 몸에 익힌 지혜는 버리지 않기를.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힘들때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무협 소설 작가로 유명하신 진산 마님이 불타는 군단(일반 1섭)의 얼라이언스 낮공대로 활동을 하시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공격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셨습니다.
(전문을 보시려면 클릭 -->진산의 공격대이야기)

위의 글은 그 공격대 이야기 44회(최종회)의 거의 종결 부분의 글입니다.
내가 와우를 하는 이유/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멋드러지게 표현한 것 같아서 인용했습니다.

정식 공대에 속한적은 없지만 막공을 다니면서 느꼈던 것들,
그 옛날 드라키를 잡고 나온 어둠추적자 갑옷을 먹을 때,
제클릭을 처음 잡았을때, 학카르를 처음 보고 킬할수 있을까 의심했던 기억들,
처음 화심에 들어간 날, 라그나로스를 킬했을 때,
그 때 그 순간들.

그저 게임이고 폴리곤과 수열의 조합이지만, 로그아웃을 하는 그 순간 사라지는 신기루이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우리네 삶과 다를 것이 없기에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10년 20년이 지난다면 희미해질 기억이지만, 추억으론 남을 것이고, 그렇다면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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